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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칼럼]조선의 그림 수집가들


수양대군이 세조로 즉위한 뒤에는 역사에서 이름이 지워질 정도로 그의 정치적 삶은 불운했다.

하지만 조선 초기 그림 수집가로서 그가 끼친 영향은 적지 않았다. 10대 시절부터 서화를 사 모았던 그의 컬렉션에는 그 시절 그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탐낼 만한 명품들이 적지 않았다.

중국 회화 사상 최고봉으로 꼽히는 고개지의 그림을 비롯해 당나라의 오도자와 왕유, 송나라의 곽충서, 이공린, 소동파 등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작품들을 소장했다. 특히 그는 '몽유도원도'를 그린 안견의 그림을 30점이나 갖고 있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손영옥의 '조선의 그림 수집가들'은 이처럼 '그림 수집'이란 새로운 잣대를 통해 조선의 삶과 문화를 읽어내고 있는 책이다. 서화에 대한 고담준론 대신 욕망 가득한 예술의 뒷골목에 초점을 맞춰 그림에 깊은 조예가 없는 사람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알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니 모으게 되더라'는 유한준의 글 마냥, 이 책에는 그림을 사랑해서 온 정열을 다해 그림을 모았던 조선시대의 실력자들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안평대군을 비롯해 월산대군, 성종, 연산군, 정조 등 당대 권력자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그림 수집에 만만찮은 돈이 필요한 사연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진정한 장점은 기자 특유의 생동감 넘치는 서술이다. 현직 기자이면서 한국과 중국의 미술 역사와 감정에 대해 공부한 저자 손영옥은 자신의 이런 배경을 십분 활용해 자칫 지겹거나, 지나치게 학술적으로 흐르기 쉬운 소재를 대중적으로 잘 갈무리해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그림 수집가들에 대한 가벼운 터치에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때론 깊숙이 숨어 있던 이야기를 끄집어 내기도 하고, 또 때론 그들이 미술 역사에 끼친 영향을 재해석 해내고 있는 것. 이를테면 연산군에 대한 다음과 같은 서술은 저자가 조선시대 문화사에 대해서도 만만찮은 식견을 갖고 있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연산군의 패륜적 행위와 폭정은 마땅히 지탄받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궁중 미술의 발전 측면에서 본다면 그의 공은 인정할 만한 부분이 있다. 연산군이 파격적인 스타일의 서화를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제도적인 벽을 부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중간 생략) 연산군은 자신을 구속하는 밧줄은 싹둑 잘라버리는 사람이었다. 원하는 그림을 보고 싶은 데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바꾸면 되는 것이다." (62쪽)

이 책은 당대 권력의 정점에 서 있던 사람들 뿐 아니라 중인 컬렉터들도 소개하고 있다. 특히 조선 후기에 많이 등장했던 중인 컬렉터들은 양반보다 뛰어난 감식안으로 당대 사회를 뒤흔들었다. 유한준으로부터 "(그림을) 진정 아는 자"란 극찬을 들었던 김광국부터, 추사 김정희가 그린 세한도의 주이공인 역관 이상적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소개되고 있다.

그림을 알게 돼 사랑하고, 또 사랑하니 모으게 됐던 조선의 그림 수집가들 이야기를 읽다보면, 어느 새 옛 그림이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 책 저자가 독자들에게 선사하는 최고의 선물인지도 모르겠다.

(손영옥 지음/ 글항아리, 1만9천800원)

김익현기자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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